659일 만에 다시 오른 출장길
월드비전에 입사 후 매년 대여섯 번씩 출장을 다녔고, 많이 다닐 때는 1년 중 100일 넘게 한국을 떠나 있기도 했는데 코로나19 팬데믹은 참 오랫동안 우리의 발을 묶었다. 659일 만에 떠나는 이번 출장의 목적지는 우간다 웨스트나일 지역에 위치한 ‘임베피 난민정착촌’. 월드비전에서 일하는 동안 동아프리카 여러 나라를 방문했는데 유독 우간다는 가볼 기회가 없었다.
늦은 오후 도착한 우간다 엔테베(Entebbe) 공항에서는 코로나19 PCR 검사를 받기 위한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끝없는 새치기를 막아내며 겨우 검사를 받고 입국 절차를 마쳤다. 어차피 내일 아침 일찍 다시 경비행기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공항 근처의 숙소에 잠시 짐을 풀었다. 얼른 씻고 편하게 눕고 싶어서 샤워기 물을 틀었는데 기대와 달리 물은 손잡이를 타고 졸졸 흘러내릴 정도로만 나왔다. ‘시원한 물줄기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구나.’ 참 오랜만의 출장이라는 것이 더 실감 났다.
저녁으로 비교적 가벼워 보이는 생선구이 1인분을 시켰다. 감감무소식이었다가 한시간 반이 지난 뒤에 10명도 먹을 만 한 엄청나게 큰 다금바리 같은 생선을 가져다 줬다. 급하게 생선친구와 전쟁을 끝내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비바람이 창문을 갈겨대고 천둥 번개가 계속 치는 통에 새벽에 잠을 깼다.
경비행기를 타고 웨스트나일 지역으로!
감사하게도 다음 날 그래도 비가 좀 그쳤다. 비행장에는 왜소하고 연약한 몸집의 경비행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다지 믿음직스러워 보이지 않는 조종사 두 명과 나를 포함한 일곱 명이 오늘 승객의 전부다. 비행기에 오르는 계단이 굉장히 흔들려서 불안한 마음이 더 커졌다.
우리 비행기는 흙길로 된 활주로를 거칠게 달려 가볍게 하늘로 솟은 뒤 빅토리아 호수 위를 한 바퀴 돌고 북쪽으로 향했다. 우기를 앞둔 우간다는 눈이 부시게 푸르렀다. 다행히도 이리저리 흔들리며 통통거린 경비행기는 약 한 시간 반 정도 후 웨스트나일 지역 아루아 공항에 무사히 착륙했다.
월드비전은 남수단과 콩고민주공화국 난민들이 집중되어 있는 북서부 아루아에 난민대응 사무소를 두고 있다. 이번 출장의 목적지는 이 곳에서 차로 한 시간 반 정도 떨어져있는 임베피 난민정착촌(Imvepi Refugee Settlement)임베피 난민정착촌(Imvepi Refugee Settlement)이다. 임베피 난민정착촌은 흰코뿔소 보호구역 근처의 라이노 난민캠프 남쪽에 위치한다. 이곳에는 대부분 오랜 분쟁을 피해서 고향을 떠난 남수단 난민들이 살고 있다. 난민을 발생시키는 인도적 위기 상황이 점차 장기화됨에 따라 세계적으로 난민 지원 기조가 기존 임시수용에서 정착지원으로 변해가고 있다. 우간다 정부도 난민들에게 집을 지어서 살 수 있도록 땅을 배정해주고 남수단과 콩고민주공화국 피난민들의 정착을 지원하고 있다. 임베피는 난민들이 이렇게 정착해서 살아가는 곳이기 때문에 ‘캠프’가 아니라 ‘정착촌’이라고 부른다.
드디어 도착한 임베피 난민정착촌 현장 사무소
한국에서 비행기로 13시간, 우간다 엔테베 공항 근처에서 24시간, 다시 경비행기로 1시간 반, 그리고 차로 1시간 반, 드디어 현장에 도착했다. 이번 2주간의 출장 동안 월드비전이 KOICA(한국국제협력단)와 함께 진행하고 있는 남수단 난민 지원사업의 현장모니터링과 재무보고 지원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우리가 방문한 날, 난민정착촌에서는 두 가지 중요한 사업 활동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다. 하나는 ‘불편 신고 체계(CRM, Complaints and Response Mechanism) 오리엔테이션’이었다.
인도적지원 사업의 주요 원칙 중 “피해 끼치지 않기(Do No Harm)”가 있다. 말 그대로 사업의 과정과 결과를 통틀어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의도를 가지고 사업활동을 진행하더라도 그 과정 중에 누군가에게 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에 사전에 이를 방지할 수 있도록 실제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신고’ 시스템을 도입한 것이다.
예컨대 월드비전의 난민지원사업 과정에서 누군가가 예상치 못한 피해를 받는 경우, 그리고 극단적으로는 구호요원이나 관계자들이 금전적인 대가를 요구하는 일이 발생한 경우 즉시 신고하고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도록 하는 것이다. 불편 신고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대표적으로 무료전화(Toll Free Call) 통한 신고, 서면을 통한 신고, 지역 내 믿을 수 있는 리더에게 직접 신고 등의 방법이 있다.
근처에서는 ‘농기구 지원’ 사업활동이 진행되고 있었다. 임베피 난민촌에서 지내는 남수단 난민들은 대부분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한 경험이 있다. 이 곳에서도 생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농기구와 종자 등 필요한 것들을 지원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사업활동이다.
더욱이 이곳에서는 조금 특별한 방식으로 사업이 진행된다. 이 지역에는 많은 수의 난민들이 유입되어 지역 주민들과 갈등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한정된 자원을 공유하면서 갈등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월드비전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런 갈등의 뿌리를 해소하려고 노력한다. 그런 관점에서 기존 지역주민과 새로이 유입된 난민들이 함께, 더불어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이들을 한 그룹으로 묶어서 공동으로 경작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설계했다. 어려운 상황에 있지만 서로의 사정을 이해하며 서로 도우며 함께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남수단 청년 ‘조나단’ 이야기
이 날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남수단에서 온 한 청년과 나눈 대화였다. 한 교회에서 난민들과 대화를 나누다 잠시 바람을 쐬러 나왔을 때 한 청년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조나단
저는 이 곳 임베피에 살고 있는 조나단(가명)입니다.
괜찮으시면 잠시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요?”
월드비전 박한영 대리
반가워요.
저는 한국 월드비전에서 일하는 박한영입니다.”
월드비전
박한영 대리
조나단
그런데 저의 가난한 주머니 사정이 발목을 잡았어요. 여러 구호단체를 찾아가 지원을 요청했지만 긍정적인 답을 들을 수 없었어요.
이번에 후원금을 모금하는 한국 월드비전 직원이 출장을 왔다고 하니, 이야기하면 길이 있지 않을까 말을 걸게 되었답니다.”
그에게서는 남루한 옷차림이 가리지 못하는 열정과 영민함이 느껴졌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과 가족을 돌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젊고 건강한 사람들이 느끼는 소외감
조나단
그런데 저에게는 그렇게 할 충분한 돈이 없어요. 구호단체들이 모두 지금 제일 어려운 사람들을 돕다 보니 저 같은 청년들은 지원을 받기 어려워요."
그의 답답함과 막막함이 아프게 다가왔다. 나 또한 가장 어려운 이들을 돕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하고 우선순위를 결코 쉽게 결정하지 않은 사업이었다. 하지만 난민촌에서 턱없이 부족한 예산으로 생존의 위기를 겪는 사람들을 먼저 지원하다 보니 조나단과 같은 사람들이 생긴다는 사실이 안타깝고 가슴이 시렸다. “한국의 후원자들에게 더 많이 모금을 요청해서 지원 범위를 늘려보겠다”는 기약 없는 약속 밖에 할 수 없어서 미안했다.
도움이 필요한 ‘모든 사람’과 함께할 수 있을 때까지
‘가장 빠르게, 가장 필요한 곳에, 마지막까지’ 함께 하는 것이 월드비전 구호사업의 모토다. 이 날의 대화 이후에 그 판단과 결정의 무게가 유난히 더 무겁고 크게 다가온다. 더 많은 사랑의 온기가 모여 조나단 같은 청년들이 꿈을 키워가는 세상이 오기를, 월드비전도 언젠가 이 모토에 ‘도움이 필요한 모든 사람과 함께’를 더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물론 지금도 마음은 그렇다!)
(WFP, UN기구 등 국제기구협력사업 총괄, 전쟁구호사업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