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자님께 보내는 편지에 항상 썼던 말이 있어요. ‘후원자님처럼 꼭 훌륭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후원자님을 만나면 저 이렇게 잘 컸다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후원자님처럼 아이들을 돌아보는 어른으로 잘 자랐다고요.”
_박영희 후원자
한 칸 방이 전부였던 집, 폐지와 공병을 주워 어린 남매를 키우신 몸이 불편한 할머니. 어린 영희를 둘러싼 매서운 현실은 사춘기 시절 흔한 방황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월드비전과 후원자님들의 따뜻한 돌봄 속에서 단단하게 자라 어느 새 어른이 된 소녀는 박영희 후원자로 아이들 곁에 섰다. 치열하고 따뜻한 영희 씨 이야기가 지금 시작된다.
남매의 울타리가 되어 준 월드비전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영희 씨에겐 ‘가난’이 가장 먼저 다가온다. 가끔 쥐까지 나오던 단칸방에서 할머니, 오빠, 영희 씨 셋이 지내야 했던 그 때는 참 힘들었고, 평범한 가정이 마냥 부럽기도 했다. 학교가 끝나면 몸이 불편한 할머니를 도와 폐지와 공병을 함께 주워 담고, 밖에서 씻는 거나 다름없이 느껴지던 욕실이 일상이었던 그 시간을 영희 씨는 덤덤한 얼굴로 미소까지 지어 보이며 전한다.
“그래도 그 현실이 엄청 슬프다고 속상해 하지는 않았어요. 할머니가 워낙 밝고 활동적인 분이시기도 했고요. 저희 남매도 쥐가 나오면 ‘으악’ 소리지르며 웃곤 했어요. 슬프다, 힘들다, 생각할 겨를도 없었던 거죠.”
생계를 위해 종일 일거리를 찾아야 했던 할머니 대신 월드비전은 영희 씨 남매의 울타리가 되었다. 월드비전 어린이 집과 복지관을 이용하며 후원자도 만나게 된 영희 씨는 월드비전 복지관을 집처럼 드나들며 부족한 가정의 돌봄을 메워갈 수 있었다. 여름 캠프, 크리스마스 파티 등 월드비전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고단한 현실 속에서 함께 기대어 살아가는 다정한 마음도 쌓아갔다. 영희 씨가 지독한 가난을 겪었지만 지금 이렇게 티없이 맑게 웃을 수 있는 건 차곡차곡 쌓인 그 마음의 힘일 것이다.
존재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던 ‘후원자님‘
2년 전, 세상을 떠난 할머니가 항상 하시던 말씀이 있다.
“항상 감사하고 너도 커서
후원자님들처럼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엄마나 다름없던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영희 씨 역시 어른이 되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라는 생각이 늘 떠나지 않았다. 세상은 매서웠지만 받은 사랑이 컸고 그 도움들 덕분에 하루하루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몸소 겪으며 알았기에 언젠가는 영희 씨도 자신처럼 힘겨운 아이들의 손을 꼭 잡아 주고 싶었다.
“한번도 얼굴을 뵌 적은 없지만 후원자님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힘이 되었어요. 기회가 된다면 직접 만나 감사를 전하고 싶었지만 그것보다 후원자님처럼 누군가를 돕는 사람이 되는 것이 더 의미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더라고요. “
처음 내 후원아동의 사진을 받던 날
운동을 하던 영희 씨가 여의치 않은 상황들로 다른 길을 찾아 사회에 뛰어들었을 때, 사진을 만났다. 운동만 해왔기에 특별한 꿈이랄 것도 없어 막막한 상황에서 이것저것 아르바이트를 하다 사진관에서 일을 하게 되며 점점 사진에 흥미가 붙기 시작했다. 사장님 어깨 넘어 배운 지식들을 토대로 열심히 촬영 방법과 프로그램을 익혔고 자격증도 땄다. 저마다 다른 손님들 얼굴을 세심하게 관찰하여 꼭 필요한 보정을 고민하는 등 열심히 노력한 결과 사진관 사장님이 가게를 영희 씨에게 맡길 정도로 실력이 쑥쑥 늘어갔다.
5년 전, 용기를 내어 춘천에 자신의 사진관을 연 영희 씨. 자연스러운 촬영과 보정 실력이 입 소문을 타 손님들이 제법 늘어나며 가게 규모도 키워 이사도 했고 점차 자리를 잡아 가던 중 늘 마음에 품던 결심이 떠올랐다. 월드비전의 오랜 후원자인 남편이 자극도 됐지만 후원자님, 할머니 그리고 자신과 했던 그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그렇게 영희 씨는 월드비전 홈페이지를 접속하고 국내 도움이 필요한 아동의 후원자가 되었다. 처음 자신의 후원아동 사진을 받은 영희 씨는 만감이 교차했다.
“오묘하더라고요. 아이 사진을 보면서 제 어렸을 때 생각도 많이 나고, 좀 설레기도 했어요. 이 친구는 어떤 친구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후원을 받고 자란 내가 이 친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게 실감도 안 나고요. 많은 생각이 들락날락했어요.”
지금 이 순간을 충실히 살면 힘든 시간은 지나가니까.
후원을 시작하고 영희 씨는 부쩍 지난 어린 시절 생각이 많이 난다. 힘들고 고단했지만 주어진 상황에서 열심히 살다 보니 끝은 있었다.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사진관을 운영하는 지금 이 순간을 어린 영희는 상상도 못했다. 좌절하지 않았을 뿐인데 영희 씨는 어느 새 듬직한 어른이 되어 있었다.
“사실 나쁜 길로 빠질 수 있는 상황도 꽤 있었어요. 아무래도 보호자의 관심에서 멀어진 경우가 많으니까 위험에 노출될 일도 더 많잖아요. 저는 어려움에 처한 아이들이 잘 이겨냈으면 좋겠어요. 열심히 공부하라는 말이 아니고요. 그냥 그 힘듦을 잘 버티고 가난 앞에서 좌절하지 않았으면 해요. 제가 그렇게 자라온 사람이니까 얼마나 괴로운 일인 줄 알지만 같이 이겨내자고 힘든 시간은 반드시 지나간다고 말하고 싶어요. ”
후원아동의 사진을 찬찬히 살펴보던 영희 씨에게 아이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는 지 물었다.
“꿈이 있다면 꿈을 잃지 말고 열심히 노력했으면 좋겠고, 꿈이 없어도 좌절하지 않기를 바라요. 힘들겠지만 조금만 견디면 단단한 어른으로 성장해 있을 거예요. 저도 그랬으니까. ”
어린 시절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아이들을 묵묵히 지켜보며 응원하겠다는 영희 씨는 앞으로 후원아동을 더 늘리고 싶다. 한 아동을 후원하기 시작하니 다른 아이가 눈에 밟힌다. 어려울 때 받은 도움과 관심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알기에 더욱 크고 넓은 울타리가 되어 주고 싶다.
초여름 햇살이 쏟아지던 춘천은 싱그러웠다. 자신을 도와주었던 후원자님이 자랑스럽고 뿌듯하시면 좋겠다는 영희 씨. 나눔을 망설이는 분들에게 이 이야기가 닿아 선한 영향력이 돌고 도는 아름다운 순간들을 기대하며, 지금도 최선을 다해 어려움을 헤쳐나가고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뜨거운 응원을 보낸다.“힘 내! 사랑해! 우리가 곁에 있을게!”
사진. 윤지영 후원동행2팀, 박영희 후원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