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문이 닳아 맨들맨들해진 손가락 끝, 주름 가득한 손등. 일하시는 데 방해가 되지 않게 조심스럽게 곁에 서니 봉사자님들의 손부터 눈에 들어온다. 꼭 우리 엄마 손처럼 다부지고 세월이 담긴 따뜻한 그 손들이 한치의 망설임 없이 움직인다. 두 봉사자님들은 마치 당신 집 부엌일을 하시는 듯 모든 것이 익숙하다. 왜 아니겠는가, 20년을 한결같이 해 온 일인데.
코로나19로 사랑의 도시락 제작이 모두 중단되고 대체부식만으로 구성된 키트가 제공된 지 일년. 정부 방역단계가 조정되면서 반찬 2종을 조리하여 다른 부식들과 배달하는 서비스가 시작되는 첫 날, 긴장감과 설렘이 가득한 월드비전 동해복지관 사랑의 도시락 나눔의 집에서 안복남, 홍옥자 봉사자님을 만났다.
“사십 대 끝자락에 봉사를 시작했는데,
올해 우리가 일흔 둘이 되었어요.”
Q. 20년 가까이 봉사를 해 오셨어요. 실감나세요?
홍옥자 봉사자 월드비전 동해복지관이 1995년에 개관을 하고 어려운 노인들에게 도시락을 제공했어요. 사랑의 도시락이 시작되기 전부터 월드비전과 봉사를 함께 했으니 정말 20년이 넘어가네요. 40대에 시작해서 우리 둘 다 이제 70살이 넘었어요. 신나게 했고 즐거웠고 행복했어요.
Q. 왜 봉사를 시작하게 되셨어요?
안옥남 봉사자 홀시아버지를 모시며 집안 일을 도맡아 하는 반복된 생활에 마음이 참 고달팠어요. 사는 게 그냥 힘들더라고. 그 즈음 지인이 봉사를 한번 해보라고 했어요. 그래서 처음 한 봉사가 장애인의 활동을 도와주는 거였는데, 비록 몸은 불편하지만 활기차게 열심을 다해 살아가는 분들을 보며 참 많이 울었어요. 감동도 되고 제 자신이 한심했어요.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생각하고 그 때부터 봉사를 정말 열심히 했어요. 봉사하면서 제 삶이 풍요로워지고 행복해졌어요. 봉사를 저는 너무 사랑해요.
Q. 20년 동안 매주 금요일, 어김없이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비결이 있어요?
홍옥자 봉사자 저는 남편이 반대가 심했어요. 집안 일도 많은데 굳이 일을 찾아 나가서 힘들게 일하는 게 싫었던 것 같아요. 근데 제가 울면서 나가는 한이 있어도 봉사는 빠지지 않았답니다. 하하. 우리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었으니까요.
안옥남 봉사자 봉사라는 게 발을 들여놓으니 뺄 수가 없더라고요. 오로지 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지 힘들고 이런 거는 없었어요.
정재희 과장 말씀은 저렇게 하셔도 두 분이 힘드셨죠. <자원봉사회>라는 단체로 함께 해 주시는 건데, 두 분이 회장을 맡으셨어요. 매 주 일일이 연락하고 인원 체크하고… 보통 일이 아니셨죠.
“가족들 식사를 준비한다는 마음으로
20년 동안 사랑의 도시락을 만들었어요.”
Q. 사랑의 도시락을 받는 아이들과 어르신들 생각하면 마음이 어떠셔요?
안복남 봉사자 정말 우연히 사랑의 도시락을 드시고 계신 할머니를 본 적이 있어요. 너무 반가워서 ‘할머니, 그거 제가 만들었어요. 입에 좀 맞으세요?’ 여쭈니까 할머니가 엎드려 절이라도 하고 싶으시다며 너무 고맙고 맛있게 드신다는 거예요. 이렇게 배고프고 외로우신 분들께 따뜻한 밥 한 끼 해 드리는 거니까 정말 가족들 먹인다는 마음으로 조리를 해요.
홍옥자 봉사자 보통 우리가 180개에서 200개 도시락을 만드는 데 하나하나 정말 정성을 다해요. 월드비전에서는 가장 좋은 재료를 준비하고요. 우리는 재료 세척부터 조리, 포장까지 허투루 하는 건 하나도 없어요. 내 아이가 먹는다, 내 부모가 먹는다, 생각하고 깨끗하게 정성을 다해요. 양배추, 오이 이런 것도 식초로 일일이 다 닦아요.
“암투병 중에도 봉사는 놓지 않았어요.
봉사가 나를 지켰다고 생각해요.”
Q. 봉사, 뭐가 그렇게 좋으셨던 거예요?
안복남 봉사자 몇 년 전부터 위암으로 투병 생활을 시작했어요. 처음 암이 발견됐을 때 다들 못산다고 했어요. 간으로 전이가 되며 제거하는 수술도 하고 쉽지 않았어요. 그런데 봉사가 나를 지켜줬어요. 나는 그걸 느껴요. 남편도 그래요. ‘평생 봉사를 하며 좋은 마음으로 살아서 당신이 살았나 보다.’라고요. 봉사를 놓지 않고 주변 사람들을 부둥켜 안고 산 덕에 지금까지 건강이 유지가 되는구나 생각해요.
홍옥자 봉사자 죽는 날까지 봉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싶어요. 누가 인정해 주는 걸 바라는 것도 아니고 조금이라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에 나 스스로 행복해요. 그거 하나예요.
“미련할 정도로 굳게 지켜온 매주 금요일의 약속,
후배들이 잘 이어나갈 거예요.”
Q. 사랑의 도시락과 함께 한 지난 20년, 어떠셨나요?
정재희 봉사자 봉사자님들은 정말 동해시 자원봉사의 역사와도 같은 분들이죠. 봉사란 것이 내가 하고 싶을 때만 하는 게 아니잖아요. 정말 더울 때 닭 볶음탕 만들면요. 에어컨을 아무리 틀어도 땀이 그냥 뚝뚝 떨어져요. 그럴 때도 하는 거예요. 1995년부터 지금까지요.
안복남 봉사자 기쁜 마음으로 하다 보니 세월이 이렇게 됐어요. 정말 미련할 정도로 20년 동안 매주 금요일의 약속을 지켰어요. 우리는 이제 나이가 들어서 예전처럼 펄펄 날라 다니지 못하지만 후배들이 잘 이어가 주리라 믿어요.
홍옥자 봉사자 처음 도시락 40개 만들 때가 지금 200개 만들 때보다 힘들었어요. 후라이팬을 바닥에 놓고 하는 거예요. 모든 게 부족했지만 반찬을 넉넉하고 맛있게 드려야겠다는 생각에 메뉴 고민도 참 많이 했어요. 지금이랑은 비교할 수 없는 환경이었지만 그래도 즐겁게 후회 없이 최선을 다했어요.
Q. 월드비전이나 사랑의 도시락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안복남 봉사자 아직도 저희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있잖아요. 영양소가 골고루 담긴 질 좋은 사랑의 도시락이 어렵고 배고픈 우리 아이들과 어르신들에게 더 많이 전달되면 좋겠어요.
“아직 배울 게 많은 일흔 두 살.
물어가며, 나누며, 살고 싶어요.”
Q. 남은 생을 어떤 마음으로 살고 싶나요?
홍옥자 봉사자 글쎄요. 아직 우리가 젊은 일흔 두 살이니까요. 하하. 모르는 것들은 물어가면서, 주변을 살펴가면서, 또 나누면서 살고 싶어요.
안복남 봉사자 아무리 지친 사람이라도 내 곁에 오면 기운이 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정을 나누고 어떤 힘든 일이 있다 하더라고 꿋꿋하게 살아가 달라고 격려하면서요. 저는 위암이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 원망 없이 ‘그래, 이 병과 사는 데까지 함께 사는 거다.’ 결심했어요.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닌 내 자신과 투쟁을 하는 거죠.
“모두가 행복한, 어려울 때 언제라도 기댈 수 있고,
사람다운 정을 나누는 그런 세상을 꿈꿔요.”
Q. 여러분이 꿈꾸는 세상은?
정재희 과장 어쩌면 사랑의 도시락은 지극히 작은 거잖아요. 가정마다 갖고 있는 문제들을 도시락 하나가 해결해 줄 수도 없고요. 하지만 이 일이 선하고 옳다고 믿어요. 이렇게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매일 감사한 마음으로 모두가 행복하길 바라요. 또,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움을 요청하는 게 어렵지 않은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안복남 봉사자 많이 각박해진 세상이에요. 코로나 때문에 더 그렇기도 하겠죠. 그래도 사람이 사람답게 작은 정이라도 나누는 세상이면 좋겠어요.
봉사는 중독이라며 환하게 웃으시는 홍옥자, 안복남 봉사자와 사랑의 도시락 사업을 10년 째 담당하고 정재희 과장과 함께 한 두 시간 남짓 인터뷰 시간. 20년의 세월을 담아내기엔 한없이 부족했지만 이웃을 돌아보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반복된 일상이 얼마나 빛나는 시간인지 알기에는 충분했다.
지금도 전국 곳곳에는 수많은 홍옥자, 안복남 봉사자가 사랑의 도시락을 제작하고, 배달하고 있다. 이런 손길이 끊어지지 않은 한 모두가 행복하고, 도움이 필요할 때 서슴없이 의지할 곳이 있고, 작은 정이라도 기꺼이 나누는 세상은 스르륵 우리 곁에 다가올 것이라 믿는다.
사진 윤지영, 신호정 후원동행2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