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을 옮기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내가 쓴 편지도 아니고, 내가 아는 이들도 아니고, 생면부지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고, 그 마음을 헤아리고, 다시 다른 언어로 옮기는 일. 후원자와 후원아동이 주고 받는 편지를 번역하는 일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번역’과는 또 다른 세계의 일인 것 같다. 바쁜 일상을 조금 더 쪼개어 후원자와 후원아동의 편지를 번역하고 있는 월드비전 비전메이커 번역봉사단. 주로 인터넷 프로그램을 통해 봉사를 하고 있는 이들이 연말을 맞아, 바깥에서 만났다. ‘다른 번역봉사자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궁금해서’, ‘처음 봉사 시작할 때 초심을 찾고 싶어서’, ‘번역 봉사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고 싶어서’, ‘어떻게 하면 서신 번역을 좀더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 지 팁을 얻고 싶어서…’ 번역봉사자들의 참가 이유는 다양했지만 이것들을 엮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다른 이들을 향한 따듯한 시선’이 그 바탕이라는 것. ?서두가 길었다. 바람이 제법 차가워지던 늦은 가을 밤, 한 자리에 모인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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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자님들~! 안녕하세요? 주로 메일과 번역 프로그램에서 인사를 주고 받는 사이인 봉사자와 직원들의 소개로 본격적인 만남을 시작했다. 오리엔테이션 때 얼굴을 익힌 직원도 있었지만 그냥 이름으로만 존재했던 직원들을 직접 확인하고 인사하는 시간. 처음인 듯 처음 아닌 처음 같은 우리 사이를 이어주고 있는 것도 ‘후원자’와 ‘후원아동’의 편지였다. [caption id="attachment_8127" align="aligncenter" width="1200"]
월드비전 담당 직원과 봉사자님과의 만남[/caption] [caption id="attachment_8128" align="aligncenter" width="1200"]
아이스브레이크 프로그램을 함께 하며 ‘같은’ 봉사를 해 왔던 서로를 알아갔어요.[/caption]
.우리 번역할 때 이런 것, 참 헷갈렸잖아요. 간단한 아이스브레이크 시간으로 서먹한 기운을 날려보내고, 그 동안 번역 하며 애를 먹였던 몇 가지 중 ‘필기체’의 늪을 파헤쳐 보는 시간을 가졌다. 어느 정도 영문에 익숙한 월드비전 직원들조차 도무지 알아보기 알쏭달쏭한 여러 나라의 영문 필기체를 확인해 보고 점검해 보았는데, 의외로 우리 번봉님들이 필기체 실력이 상당해서 그다지 헷갈려 하시지 않았다는 것! 심지어 퀴즈로 내었던 문제들마저 척척 맞추셔서 준비한 직원이 머쓱했던 시간이기도 했다. [caption id="attachment_8119" align="aligncenter" width="1200"]
알쏭달쏭 필기체를 함께 확인하던 시간. 예상했던 것보다 월등히 좋았던 봉사자님들의 실력에 직원들은 깜짝 놀랐다죠.![/caption]
.글 속에 마음을 담는 일, 편지 2014년부터 번역 봉사를 시작해서 지금까지 4000 통이 넘는 편지를 번역한 정훈채 봉사자님이 이 날 대표로 감사장을 받았다. 월드비전 모든 직원과 편지를 주고 받는 후원자, 그리고 우리 아이들의 마음을 담아 전달한 감사장을 받은 정훈채 봉사자님은 묵직한 한 말씀을 나누어 주셨다. “편지란 글 속의 마음을 담아 쓰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내가 번역하는 한 문장이 누군가의 삶을 바꿀 수 있는 한 문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여러분들이 하는 그냥 하는 봉사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봉사라는 자부심을 갖길 바랍니다!” [caption id="attachment_8120" align="aligncenter" width="1200"]
봉사자들을 대표해 감사장을 받은 정훈채 봉사자님[/caption]
.나에게 번역봉사란? "저는 월드비전 후원자였다가 번역봉사까지 하게 되었어요. 당시에 제 후원아동과 한 살 차이여서 친구처럼 편지를 주고 받았어요. 그 친구는 수능을 앞둔 제 고민도 들어주고 응원도 해주었어요. 그 때 편지의 힘을 알았어요. 친구가 어른이 되고 저도 어른이 돼서 마지막 편지를 주고 받는데 너무 슬펐어요. 지금도 자립을 하게 된 아동이 후원자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를 번역할 때 그렇게 눈물이 나요. 잘 지내시고 건강하시라는 진짜 좋은 이야기뿐인데 그걸 읽을 때마다 매번 눈물이 나더라고요. "?
(오유진님) "대학교 1학년이 되면서 방황을 많이 했어요. 인생에 빨간 불이 들어 온 거예요. 정신 못 차리던 그 때 월드비전에서 일하는 지인이 번역봉사를 소개했어요. 그렇게 시작한 번역 봉사가 널을 뛰던 제 마음을 잠잠히 가라앉혀 주었어요. 사랑과 감사가 담긴 편지들을 번역하다 보니 어느 새 내 인생에도 따듯한 빛이 보이는 거예요. 전 그래서 번역 봉사가 고마워요."
(박경윤님) [caption id="attachment_8122" align="aligncenter" width="1200"]
흔들리던 삶 속에서 따듯한 빛을 보여준 번역봉사가 고맙다는 박경윤 봉사자님[/caption] "프리랜서 번역 일을 오래하다가 작년부터 일을 관두며 조금 여유가 생겼어요. 번역을 오래해서 익숙하게 할 수 있으니 한 번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아마 이 자리에서는 제가 가장 고령자일 거예요. 나이도 많은데 이런 모임까지 나가도 괜찮으려나 친구에게 이야기했더니 친구가 그러는 거예요. ‘나이가 많든 적든, 헌신적인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니 가서 만나라. 나눔에 나이가 어디 있니?’ 친구 말지 맞았어요. 와서 보니 이런 좋은 일에 함께 하는 젊은 분들이 많아 흐뭇하고 자랑스러워요. 여러분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오래오래 노력하고 싶어요."
(김예녕 님) [caption id="attachment_8123" align="aligncenter" width="1200"]
나눔에는 나이가 없다! 젊은 친구들과 오래오래 봉사를 하고 싶은 김예녕 봉사자님[/caption]
.어쩌면 우리는 외로운 사람들. 이날 모인 봉사자님들 중 이름을 밝히기 부끄러워하셨던 한 분은 이런 말씀을 들려주셨다. “시간도 마음도 많이 쓰이는 봉사임이 틀림없어요. 그런데 그 시간이 힘들다기보다 나의 외로움이 선한 사랑의 말들로 채워지면서 내 슬픔도 위로가 되고 내 곁도 따듯해 지더라고요. 우리는 어쩌면 조금씩은 다 외로운 사람들이잖아요. 그 외로움을 저는 이렇게 후원자와 후원아동이 나누는 사랑을 번역하며 달래는 것 같아요. 너무 좋아요.” 나이 지긋한 봉사자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하마터면 눈물이 뚝 떨어질 뻔 했다. 이렇게 가만가만히 외로움을 이야기할 수 있는 봉사자님이 부러웠다. 이 날의 다정했던 공기와 이 분들의 선한 눈빛과 따듯한 이야기들을 글로 다 담아내지 못해 안타깝다. 후원자에게, 후원아동에게 편지를 적는 이들도 이런 마음이겠지. 마음을 다 담아내기에 부족한 ‘글자’의 야속함을 안고 부디 내 마음이 잘 전달되길 바라는 바램. 번역 봉사자들은 그 간절한 바람들을 하나라도 놓칠 세라 최선을 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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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자들 역시 각자 인생에서 어렵고 힘든 일들이 많을 터. ‘걱정인형’을 만들며 서로의 고민도 자연스럽게 털어놓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시간도 가졌어요.[/caption]
글. 윤지영 후원동행2팀 사진. 편형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