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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뎁스 메뉴 열기/닫기“누나는 꼭 학교를 안 다녀도 되어요. 결혼해서 남편을 돕고 살면 되니까요.”
2008년 카킨도 사업장 기초선 조사 중 아동보호인식에 대한 설문에서 한 초등학생 남자아이의 답변이다.
여성, 여자아이에 대한 카킨도 주민들의 생각을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카킨도는 전통적으로 여성 경시 풍조가 강한 지역이다. 여성은 땅이나 재산을 소유할 권리가 없고, 집안의 주요한 문제는 남성이 결정권을 가진다. 딸을 ‘가족의 수입원’으로 여기기 때문에 형편이 어려운 가정일수록 지참금을 받기 위해 딸을 일찍 결혼시키는 일이 많았다. 딸의 결혼은 곧 자녀를 양육하는 부담이 줄어드는 것을 의미했다.
“부모들은 되려 어린 딸이 임신하면 기뻐하기도 했어요. 수입을 의미하니까
조혼 문제를 신고하는 데는 소극적이었어요. 마을에 불화가 생기거나 이웃과 관계가 틀어질까봐요.
정작 딸의 미래는 뒷전이었죠.”
- 2008년 카킨도 사업장 기초선 조사 中 주민의 한마디
문화와 가난, 사람들의 인식이 복잡하게 얽혀 조혼의 뿌리가 깊이 박혀있는 카킨도.
우간다월드비전은 이 악습을 끊어내기 위해 아동보호사업의 주요한 축으로 조혼 예방과 방지에 집중하고 있다.
월드비전이 떠난 후에도
장기적이고 지속적으로 조혼을 막는 가장 유효한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주민들이 직접 마을의 아동보호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주민으로 구성된아동보호위원회가 마을마다 꾸려져 조혼, 학대, 아동 노동 등의 이슈가 있는지 모니터링하고 월드비전과 긴밀히 협력하여 문제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최근 카킨도 사업장의 키장기 마을에서 조혼 사건이 발생했다.
어머니가 친척 장례식으로 며칠 집을 비운 사이 15살 소녀 프라미스는 한 소년과 강제로 결혼하게 되었다.
얼마 전 아빠가 가족을 두고 떠나버리자 프라미스는 조혼의 표적이 되었다. 여자만 사는 가정은 남자 보호자가 없다는 이유로 조혼, 성적학대 등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장례식을 다녀오고 놀란 어머니는 딸의 행방을 수소문했다. 들리는 소문은 아이가 이웃에 시집을 갔다는 것.
어머니는 프라미스가 돌아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봤지만, 돈이 많은 상대 집안에서 수를 썼을거라는 두려움에 당국에 신고도 하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굴리고 있었다.
“결국 어머니는 아동보호위원회 모임에 오셔서 이 고민을 나눴어요. 우리는 경찰서에 가서 이 케이스를 신고했습니다.”
키장기 마을 아동보호위원회의 폴은 프라미스 어머니와 경찰서를 함께 찾았다.
하지만 염려대로 남자아이의 집은 부정한 방법을 취했고, 뇌물을 받은 경찰은 오히려 이 일을 무마시킬 방법을 찾고 있었다.
“경찰에 신고하는 것만으로는 안되겠다 싶어서 다른 방법을 찾았죠.”
월드비전과 논의한 끝에 폴이 택한 방법은 조혼 신고 116 전화 라인에 신고하는 것이었다.
우간다월드비전은 2015년 현지 NGO, 각 마을의 아동보호위원회와 협력하여 정부에 조혼 신고 116 전화 라인(Child Help Line)을 설치했다. 조혼 문제가 생겼을 때 경찰, 지역정부에 바로 신고할 수 있는 무료 상담 라인이다.(물론 조혼을 포함한 아동보호이슈 전반을 다룬다.)
신고가 접수되면 지역정부는 정식으로 후속 조치를 취해야 한다. 제도 안에서 아동이 보호받을 수 있는 조혼 신고 시스템이 마련된 것이다.
“116 조혼 신고 라인을 통해 군수에게 이 사건이 보고되었고,
다행히 프라미스는 엄마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어요. 지금 그녀는 학교 생활을 알차게 보내고 있어요.
- 키장기 아동보호위원회와 '아빠 히어로' 모임의 리더 폴
4개 마을의 아동보호위원회를 대표하는 4명의 아빠, 폴(모임 리더), 알렉스, 비아누스, 저스티스 씨는
한 달에 한 번 지역에 벌어지는 조혼 사례를 점검하고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한다. 주민을 대상으로 아동권리 교육도 진행하고, 조혼의 위험성을 설파한다.
"조혼이 어린 엄마뿐 아니라 나중에 태어날 자녀에게도 좋지 않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분명히 알았으면 좋겠어요. 출산할 때 유아사망률도 높고, 발육 부진 상태가 될 가능성이 높아요.
무엇보다 엄마의 가난은 고스란히 아이에게 대물림 됩니다."
- ‘히어로 아빠’ 모임 멤버 알렉스
인식개선활동과 더불어
요즘은 116 전화 라인 등 조혼 신고 방법을 홍보하기 위한 월드비전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강한 햇살이 내리쬐는 오후, 학교 운동장의 나무 그늘 밑에서 열린 ‘히어로 아빠’ 정기회의가 열렸다. 알렉스와 폴은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오늘도 2시간, 1시간이나 되는 먼 길을 걸어왔다.
“사실 전 누나의 딸을 입양했어요.”
‘히어로 아빠’ 모임의 리더 폴이 조혼과 맞서 싸우게 된 계기를 나누었다.
“어린 나이에 결혼한 누나는 이혼 후 친정에 돌아왔습니다. 당시 8살이던 조카를 딸로 맞이하게 됐지요.”
7년 간의 고통스러운 결혼생활을 마친 누나는 '딸을 부양하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혔다고 한다.
그녀의 굴곡진 삶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봐온 폴은 조혼 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됐다.
8살 아이는 어느덧 17살 숙녀가 되었다.
그리고 폴은 사춘기 딸과 매일 대화를 나누는 다정한 아버지가 되었다.
얼마 전 딸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
"교제를 막거나 반대하지 않았어요. 사실 우간다 부모의 흔한 반응이 절대 아니죠.(웃음)"
‘바르게 행동하는 친구가 되어주길. 무엇보다 우리 딸을 소중히 대해줘. 이것이 교제를 허락하는 조건이야.
‘딸바보’ 폴은 남자친구를 직접 만나 이런 당부를 했다.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같은 아빠가 되어야죠. 딸의 삶에 가까워야 보호해줄 수 있으니까요.”
- ‘히어로 아빠’ 모임 멤버 비아누스
오늘의 토론은 ‘나부터 딸에게 좋은 아빠가 되자’는 결론으로 끝이 났다.
"우리부터 시작하고 싶어요. 권위적인 아버지가 아닌 딸을 지켜주는 히어로 아빠요."
어린 신부를 구출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 월드비전의 좋은 파트너, ‘히어로 아빠’들은
카킨도의 전통적인 아빠의 모습을 넘어서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여자 아이들이 본래 누려야 할 가능성과 잠재력이 가로막히지 않도록,
이들은 월드비전과 함께 걷고 있다.
월드비전이 떠나 카킨도가 자립하는 그날에도 이들은 소녀들과 함께 걸어갈 것이다.
글. 월드비전 커뮤니케이션팀 하경리
사진. 월드비전 커뮤니케이션팀 윤지영, 국제월드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