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달력을 보니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이 지진이 발생한 지 6개월째 되는 날입니다. 반년이 지났고 상황은 빠르게 안정되고 있지만 당시의 슬픔과 아픔은 여전한 것 같습니다.
튀르키예 내 지진 구호 사업담당자 박한영 과장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이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난 지금, 후원자님의 도움으로 현장에서는 활발한 구호활동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유난히 무더운 올여름을 현장에서 이재민들과 함께 보내고 있는 튀르키예-시리아 지진 구호 사업담당자 박한영 과장을 통해 현지 상황은 어떤지, 월드비전은 어떤 활동을 펼치고 있는지 생생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Q. 현재 어디에서 어떤 업무를 하고 있나요?
저는 지진 집중 피해 지역 중 한 곳인 튀르키예 남동부 가지안테프에 머물며 국제월드비전 시리아-튀르키예 지진 대응 사무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사업을 계획하고 사업이 목적에 따라 잘 진행되도록 관리하는 일이 주요 업무입니다. 현지 정부나 기관과 원활한 협업을 위해 회의도 자주 가지며, 특히 예산, 인력, 사업 성과 측정, 수혜자 보호 등 세부적인 분야를 담당하는 직원들이 효과적으로 협업할 수 있도록 연결하는 역할을 합니다.
Q. 지금 현장 상황은 어떤가요? 머무르기 괜찮나요?
월드비전 사무소가 있는 가지안테프 시내는 지진 피해가 크지 않아 생활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습니다.
피해가 큰 인근 도시에는 당시의 참혹한 모습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습니다. 지진이 발생한지 반 년이 지났고 튀르키예 정부에서 계속 잔해들을 정리하고 있지만 여전히 반쯤 무너져 있거나 주민들이 모두 이주해 텅 빈 건물들이 많이 보입니다.
Q. 현지 주민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지진 이후 임시 텐트에서 지내던 피해 주민들은 2~3년간 지낼 수 있는 거주용 컨테이너로 이주하고 있습니다. 튀르키예 정부 재난관리청(AFAD)을 중심으로 월드비전을 비롯한 여러 기관들이 합심해서 컨테이너 캠프를 만들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에서 지원하는 컨테이너 캠프 소식도 들리고, 최근에는 튀르키예 내 한인사회에서 지원한 컨테이너 캠프 조성 소식도 들려서 뿌듯한 마음도 듭니다.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튀르키예 정부가 자국민을 우선적으로 컨테이너 캠프에 입주하도록 하다 보니 튀르키예 내 많은 난민들이 여전히 열악한 텐트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튀르키예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난민을 수용하고 있는 국가입니다. 특히 시리아 난민은 360만 명이 넘습니다.)
여름이 시작되면서 기온이 40도를 넘는 곳도 많은데 거주용 컨테이너나 텐트에 에어컨을 갖춘 곳이 거의 없어서 어떻게 이 더위를 견뎌낼지 걱정이 아주 많습니다.
Q. 월드비전은 튀르키예와 시리아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굉장히 다양한 사업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고, 요약해 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피해 지역이 복구되는 동안(약 2~3년 예상) 지낼 임시 거주지 조성을 위한 컨테이너 하우스, 화장실, 샤워실 설치 및 관리 지원
수혜자들의 자존감을 지켜주며 필요를 채워줄 수 있도록 현금 또는 상품권 지원, 공공 근로 기회 제공
생계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새롭게 삶을 꾸려갈 수 있도록 직업훈련, 창업지원, 취업지원
재난 상황을 겪거나 가까운 사람을 잃은 고통에서 회복을 돕는 심리상담, 집단심리치료, 아동심리치료
월드비전은 사업을 진행할 때, 어느 지역인지,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지, 해당 지역에서 활동하는 다른 단체들은 어떤 지원을 하는지를 면밀히 고려해 가장 적절한 구호 사업을 진행합니다.
Q. 월드비전 구호사업에 특별한 점이 있다고요?
사실 월드비전은 예산 규모로나 직원 수로나 웬만한 유엔기구보다 큰 NGO입니다.
이 말은 재난 대응에 있어 월드비전이 더 빠르게, 큰 규모로 긴급구호와 재건복구를 진행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다른 기관들이 잘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리더십을 발휘하는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특히 현지의 중소 구호단체들이 지속적으로 자국 내 재난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역량을 강화하고 직접 사업을 수행하도록 지원해서 의존성을 낮추는 게 중요한데요, 이런 배경에서 월드비전은 튀르키예와 시리아 내 현지 구호단체들과 많은 사업을 함께 수행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디게 움직이긴 하지만 깊은 뿌리를 튼튼하게 심어가는 과정이고 이렇게 심어진 나무들이 언젠가 월드비전이 떠나도 계속해서 좋은 열매들을 꾸준히 맺으리라 기대합니다.
Q. 파견 중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신가요?
재난은 모두에게 비극이지만 어려운 사람들에게 특히 가장 무서운 얼굴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 튀르키예 남동부, 시리아 국경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하란(Haran)이란 도시에 다녀왔습니다. 고대에는 구약성서에도 나올 정도로 문명이 발달했던 곳인데 지금은 튀르키예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운 곳 중의 하나입니다.
이곳에는 시리아 난민을 수용했던 난민캠프가 있었습니다. 이곳의 컨테이너 하우스에서 지내던 난민들이 튀르키예 내 다른 지역에 정착하거나 유럽의 다른 국가로 이주하면서 하란 난민캠프는 몇 해 전 공식적으로 문을 닫았습니다.
최근 튀르키예 정부는 지진 피해를 입은 시리아 난민들을 이곳으로 다시 이주시키기로 하고 있습니다. 이에 발맞추어 월드비전도 새롭게 이주하는 난민 가정에 필요한 기본적인 물품(매트리스, 침구류, 식수통, 카펫 등)을 확보하여 캠프 내 창고에 비축해두고 있는데, 저와 동료들은 이 물품 준비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방문했습니다.
수년 전 난민들이 떠나고 남은 하란 난민캠프 내 낡은 컨테이너
몇 년간 사람이 살지 않아 폐허가 되어버린 캠프를 걸으며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 해 전 이 낯선 곳에서 힘든 시간을 버텨내며 새로운 삶을 꿈꿨을 한 가족을 떠올려 봤습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난민 캠프의 컨테이너를 떠나 인근 소도시의 집 다운 집에 정착한 그들이 지진을 겪고 다시 모든 것을 잃고 이곳으로 돌아올 모습을 상상하니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타는 태양에 잠시만 걸어도 땀 범벅이 되는 이 곳의 여름을 숨막히는 컨테이너 안에서 보낼 사람들이 떠올라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Q. 앞으로 월드비전은 튀르키예, 시리아에서 어떤 지원을 해나갈 예정인가요?
월드비전은 재난 직후 30일 동안 긴급구호 단계, 그리고 올해 9월까지는 안정화 단계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2026년까지 장기적으로 재건과 복구를 해 나가기 위한 전략과 사업 계획을 수립하고 있습니다.
월드비전은 시리아와 튀르키예 지진 피해 지역의 주민들이 안정을 되찾고 아이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자라기에 충분한 환경을 갖출 때까지 계속해서 지원을 이어갈 계획입니다. 특히 시리아는 지진이 발생하기 이전에도 이미 인도적 지원 필요가 매우 높은 곳이었고 내전 상황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사업을 확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Q. 후원자님들께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동양인을 쉽게 찾기 힘든 튀르키예 가지안테프에는 제가 왜 이 곳에서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구호활동을 하고 있다고 대답하면 자연스럽게 지진 당시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그분들은 가족과 친척, 친구, 존경하는 선생님을 잃은 이야기부터 당시 두렵고 처참했던 상황을 떠올리며 눈물을 글썽입니다.
이야기는 보통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당시에 받은 도움, 전해진 따뜻한 마음, 전세계에서 한걸음에 달려온 수 많은 사람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위안을 받았는지 설명하며 진심 어린 감사를 전합니다.
특히 한국에서 보내준 관심과 위로는 이분들에게 가장 가까운 친구에게 받는 위로처럼 특별하게 여겨지는 것 같습니다. 이분들의 따뜻한 감사의 마음을 후원자님들을 대신해서 받는 것 같아서 뭉클하기도 하고 송구한 마음도 듭니다. 진심을 담아 후원자님들께 감사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재난은 갑작스럽게 찾아와서 오래도록 머무릅니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초기의 긴급구호 상황이 물론 가장 중요하지만, 사실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져 가는 지금이 본격적인 구호활동의 시작입니다.
얼마나 길어질지 알 수 없지만 저희는 여전히 이곳에서 진심을 담아 일하겠습니다. 모든 분들이 매일 재난을 기억할 수는 없겠지만 가끔 전해 드리는 소식을 들으시면 잠시나마 기억해 주시고 계속해서 응원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후원자님, 애통한 마음으로 보내주신 후원금은 꼭 필요한 곳에 쓰이고 있습니다.
월드비전은 주민들과 아이들의 평범한 일상이 회복될 때까지 가장 필요한 곳에, 마지막까지 함께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