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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뎁스 메뉴 열기/닫기지금도 전세계 10명 중 4명, 30억 명이 넘는 사람들은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UN은 이들을 기억하고 돕는 일에 힘을 합치자는 의미로 매년 10월 13일을 세계 식량의 날로 정했는데요. 월드비전 국제구호·취약지역사업팀 서희종 대리가 식량 문제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 월드비전은 어떻게 일하고 있는 지, 생생한 현장 이야기와 함께 들려드립니다.
30억 명 이상이 제대로 된 식사, 즉 충분히 건강한 식사를 하지 못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충분히 건강한 식사’을 쉽게 풀어보자면 몸에도 좋고 맛도 좋은 신선한 음식 재료가 다양하게 갖추어진 식사라고 할 수 있어요. ‘토마토가 빨갛게 익을수록 의사의 얼굴은 파랗게 질린다’는 유럽의 속담처럼, 좋은 음식을 잘 챙겨 먹을수록 건강을 지킬 수 있다는 삶의 지혜를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건강을 위해 식단 관리를 경험하신 분이라면 훨씬 더 깊이 공감하실 텐데요. 영양가 있는 음식을 골고루 챙겨먹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열량과 영양 성분을 꼼꼼히 따져 매일 하루 세 끼, 식단을 짜는 것부터 정말 만만치 않지요. 비교적 쉽게 제철 음식을 구할 수 있는 한국에서도 참 어려운 일인데, 전세계에서 극심한 식량 부족 문제를 겪고 있는 현장 사정을 생각해보면 앞서 말씀 드린 30억 명의 사람들에게 닥친 막막함이 조금이나마 이해되기 시작합니다.
전세계 곳곳, 식량위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현장에서 월드비전은 과연 충분히 건강한 식량을 굶주린 사람들에게 지원하고 있을까요? 그들은 무엇을 먹고 있는 걸까요? 많은 분들이 궁금하셨을 텐데요. 식량위기대응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제가 파견되었던 현장 이야기 토대로 차근차근 설명해 보겠습니다. 인도적 대응의 최소 기준에 따르면, 성인 한 사람은 매일 최소 2,100Kcal 만큼의 영양소를 섭취해야 합니다. 이 안에는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기타 미량 영양소가 모두 포함되어야 하죠. 단백질은 총 열량의 최소 10~12% 그리고 지방은 17% 비율이 유지되어야 하고요. 월드비전이 식량위기 현장에서 만들어 배급하는 구호 식량 패키지는 앞서 말씀 드린 성인 1인 기준, 총 열량과 영양소 간 최소한의 기준은 지키면서 재난 현장 상황에 따라 음식의 종류를 다양하게 바꾸어 구성됩니다. 예를 들어 쌀이라고 해도 종류가 천차만별이라 우리가 흔히 먹는 찰기 있는 쌀을 아프리카 지역의 주민들에게 나누어 주면 맛과 식감이 낯설어 오히려 거부감을 줄 수도 있습니다. 또, 콩의 종류도 매우 다양해서 동북아시아 지역에서는 주로 초록색 완두콩을 지원하는 하지만 서남아시아 지역은 일반적으로 노란색 렌틸콩을 나누어 줍니다.
미얀마 콩(왼쪽)과 짐바브웨 콩(오른쪽)입니다. 색깔부터 모양까지 많이 다르죠?
위와 같은 대규모로 구호 식량을 배급하는 방식은 재난 발생 초기에 이루어지는 긴급구호 또는 주민들이 스스로 식량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보다 효율적인 선택입니다. 아이티를 강타한 허리케인 메튜(Matthew)를 기억하시나요?? 피해 지역의 구호사업 진행을 점검하기 위해 2017년 여름, 출장을 갔었는데요.? 월드비전 사업 지역 길목에서 주민들에게 구호물품을 나눠주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다행히 현장은 질서를 지키며 안전하게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구호현장에서는 때론 굶주림에 지치고 화가 난 주민들이 배분 현장에 쌓여있는 물품을 보고 혹시 못 받을 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소란이 일어나기도 해서 직원들이 각별히 주의를 기울인답니다.
그런데 정돈된 배급 현장 모습 뿐 아니라 놀라운 변화가 또 하나 눈에 띄었습니다. 바로 주민들이 그 자리에서 배분 받은 물건을 물물교환하거나 상인에게 직접 판매하기도 했습니다. 재난 발생 이후 긴급구호사업이 1년 여 동안 잘 진행되어 어느 정도 생존이 보장되면서 주민들은 일괄적으로 구호 식량을 배급 받는 것에서 좀더 발전된 삶을 일구어 가고자 했기 때문이지요. 이런 경우, 주민들이 직접 농사를 짓거나 시장에서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생존’이 목적이었던 단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안정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식료품만 제공되는 구호 식량보다, 땅에서 직접 키운 제철 과일과 채소로 요리를 해먹는 것이 아이와 엄마를 포함한 가족 모두에게 더욱 건강한 식단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남수단에서 진행되고 있는 영양 지원 사업에서는 마을 최고의 영양식 요리 방법을 주민들이 서로 공유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한 마을에 사는 주민들은 비슷한 음식 재료를 사용해서 요리를 하기 때문에 아이들 영양 상태가 비슷하기 마련인데 종종 유난히 영양 상태가 좋은 아이가 있습니다. 이런 아이들이 먹는 음식을 살펴보니 특별한 요리법이나 건강에 더 좋은 재료를 사용하는 경우가 발견되었습니다. 자신들만의 요리 방법을 지역 주민들이 서로 공유하면서 마을 아이들과 주민들의 영양 상태도 점점 좋아졌지요. 학교나 유치원의 급식 활동을 지원하니 아이들이 건강해 질 뿐 아니라 출석률까지 높아지는 효과도 가져왔답니다.
몇 해 전, 콩고민주공화국 동부 국경 근처 사업 현장에서 주민 한 분을 만났습니다. 바나나가 주렁주렁 달린 농장을 자랑스럽게 보여주며, 한 그루로 시작한 바나나 농사가 이제 열 그루가 넘어 농장을 이루었다고 해맑게 웃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콩고민주공화국 동부 국경 지역은 오래 전부터 분쟁을 겪은 취약 지역입니다. 세월이 흐르며 20년 전 분쟁을 피해 다른 나라로 떠났던 난민들이 하나, 둘 고향으로 돌아와 정착을 하고 있는데요. 우간다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 두 나라 주민들이 서로 왕래하며 식료품이나 생필품을 사고 파는 게 흔한 일이었습니다. 월드비전은 난민들이 하루 빨리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국경 근처에 마을에서 공동으로 운영하는 식량 보관소를 만들었고, 주민들은 직접 재배한 바나나, 양파 등 상품성이 좋은 농작물을 판매해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제가 만난 바나나 농장 주인도 월드비전의 지원 덕분에 안정적인 수입이 생겨 가정 형편이 나아진 분이었어요.
최근 월드비전에서는 코로나19 발생 이후 전세계 식량 가격의 변화를 조사한 보고서를 발행했습니다. 보고서에 의하면 전세계 식량 가격은 지난 10년 동안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사회·경제적 교류가 감소하며 실업률이 증가하고, 가정의 수입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습니다. 지금 같은 추세가 계속된다면 1천 3백 만 명의 아동이 추가로 영양실조를 앓게 되리라 예상됩니다. 전세계의 식량위기를 겪는 어린이와 주민들이 충분히 건강한 식단을 누리기 위해선, 단순히 구호 식량을 배분하고 지역 먹거리를 풍부하게 만드는 것 이상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취약국가에서 계속되는 분쟁 뿐만 아니라 기후변화의 가속화로 인한 불안은 식량위기 문제를 더욱 복잡하고 어렵게 만들고 있어 우리의 관심이 더욱 간절한 상황입니다.
월드비전은 모든 어린이들의 풍성한 삶을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최악의 식량위기 상황을 막기 위해 식량 공급을 확대하고, 주민들이 스스로 위기에 대응할 수 있도록 기초적인 소득 증대를 위한 가정의 경제적 지원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기술이 발전하면서 현장 상황에 따라 가능한 경우 가정 단위로 긴급재난지원금을 지원하고 이 내용을 정확하게 데이터화 하여 사업 운영 비용을 줄이고 보다 효과적으로 식량 소비량 및 만족도를 측정하고 있습니다. 고통에 처한 사람들을 더욱 힘들게 만드는 것은 알 수 없는 내일에 대한 불안감입니다. 월드비전은 식량위기 현장 마저 어김없이 덮친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가장 취약한 곳의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찾아가, 이들이 스스로 재난을 이겨낼 수 있을 때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모든 어린이들의 풍성한 삶 그리고 모두가 충분히 건강한 식사를 누릴 수 있도록 바로 여러분이 마음을 모아 주시길 바랍니다.
글. 국제구호·취약지역사업팀 서희종
사진. 월드비전
벼랑 끝 아이들의 손을 지금 잡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