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세 박하자 할머니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밭일과 공공일자리 등으로 살뜰히 돈을 모아 십 여 년에 걸쳐 아시아와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우물 네 개를 선물한 할머니는 마지막 딱, 하나만 더 우물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어린이를 돌보는 일이 어른의 할 일이라며 꿈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박하자 할머니의 뜨거운 꿈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어린 딸 둘을 두고 세상을 떠난 남편, 엄한 시어른, 끝도 없는 집안 일과 밭일. ‘악’ 소리 날 법한 시간을 박하자 할머니는 참 부지런히 살아냈습니다. 사랑 많은 친정 어머니에게서 물려 받은 긍정적인 마음가짐과 신앙은 삶의 고비고비마다 불끈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었죠. 그렇게 고단했던 세월이 이제 좀 끝이 보이는 구나, 싶을 무렵 할머니는 우연히 TV에서 아프리카 아이들을 보았습니다.
“구정물이라도 먹으려고 먼 길을 걸어가는 아이들을 보니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그 멀리 가서 더러운 물을 뜨고 발에는 부스럼이 나고… 그 시간에 공부를 하고 놀아야 할 아이들 아닙니까? 뭐라도 해야겠다 싶었지.”
할머니의 꿈은 그 때 시작되었습니다. 마을에 우물이 생기면 아이들에게 깨끗한 물을 먹일 수 있다는 이야기에 할머니는 돈을 모으기 시작했지요. 물이 해결되면 아이들은 병도 안 걸리고, 학교에도 갈 수 있다고 하니 하루라도 빨리 우물 하나 파줘야겠다, 생각하고 안 그래도 알뜰했던 살림살이를 더욱 조였습니다.
그렇게 3년 동안 꼬박 천 만원을 모아 2013년, 할머니는 월드비전과 함께 아프리카 우간다의 작은 마을에 우물을 선물했습니다.
박하자 할머니의 하루는 바쁘게 채워집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닭들에게 모이를 주고, 집 근처 밭에 나가 심어둔 작물들을 오전 내 돌보지요. 할머니의 밭에는 깻잎, 고추, 참외, 방울 토마토, 땅콩이 빼곡히 자라고 있습니다. 밭일을 할 수 없는 찬 겨울을 제외하면 할머니는 밭에서 오전을 보냅니다.
“밭에 가끔 물을 일부러 안 갖고 나가기도 해요. 물 못 마시는 아이들이 있는데 내 목 축이는 게 미안할 때도 있고 아이들이 얼마나 힘들까, 잊지 않으려고요. 한 번은 옆 밭에서 일하던 아주머니가 물을 주셨는데, 그 한 모금이 얼마나 달던지…. 이런데 아이들은 어떻겠습니까?”
우간다에 우물을 선물한 후, 할머니는 다시 돈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아침 밭일을 마치고 부지런히 점심식사를 한 후, 공공일자리 ‘노노케어’(노인이 다른 노인을 돌보는 일)에 나가 불편한 동네 노인을 돕다 보면 어느새 저녁이 되죠. 자신을 위해 쓰는 돈을 최대한 아끼며 한 달 동안 모으는 돈은 30~50만원. 이렇게 3년 정도를 모아 천 만원이 되면 우물 하나를 파고, 또 다시 3년을 모아 우물 하나를 파다 보니 8년 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할머니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잠비아, 방글라데시, 에티오피아 아이들에게는 깨끗한 물을 언제라도 마실 수 있는 우물이 생겼지요.
“주변에서 말리는 사람들도 있지만 격려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한번은 내가 나누는 일에 중독이 된 거 같다 하니까, 그건 참 좋은 중독이라고 칭찬을 하더라고. 하하하.”
여든을 바라보는 할머니의 꿈은 단 하나, 우물을 하나라도 더 파는 것입니다. 앞으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생각하니 쉴 틈이 없는 할머니. 정작 본인은 허름한 집에서 지내지만 깨끗한 물을 마시고 있는 아이들 사진을 보면 고단함도 잊은 채 부자가 된 기분입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여든인데, 팔순에 우물 하나 더 파고 싶어요. 언제 떠날 지 모르니까 마음이 좀 급해요. 하나만 더 파주고 하늘나라 가고 싶어. 그러면 너무 좋겠어.”
어린 시절 몸이 많이 아팠던 박하자 할머니는, 그런 자신을 살리기 위해 어떤 고생도 마다하지 않았던 엄마가 늘 그립습니다. 돌아가신 지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여전히 보고 싶은 엄마를 다시 만나게 되는 그 날, 할머니는 사랑 넘치던 엄마 대신 내가 이만큼 아이들을 끌어안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엄마가 오래 사실 줄 알고 못해드린 게 많아요. 돌아가시고 나니 그제서야 너무너무 후회가 돼요. 엄마한테 못 전한 사랑을, 아이들에게 힘껏 베풀어야죠. 엄마가 잘했다, 할거야. 그거면 나는 족해요. 더한 욕심도 없고, 지금 충분히 즐겁고 기뻐요.”
서울에서 오는 손님들을 위해 좀처럼 입을 일이 없는 고운 옷을 차려 입으신 박하자 할머니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은 꿈결처럼 흘렀습니다. 밭을 구경시켜 주시며 똑똑, 깻잎을 따고 탐스럽게 열린 참외까지 챙겨 손에 꼭 쥐어주시는 할머니의 사랑은 숨찬 하루하루를 달리던 우리들에게도 포근한 쉼표가 되어주었습니다.
아이들을 잘 돌보는 것이 어른들이 할 일이라는 박하자 할머니의 빛나고 푸른 꿈을 응원합니다. 그리고 존경합니다.
사진. 윤지영 후원동행2팀, 김수희 커뮤니케이션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