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년 만에 만난 나의 후원자
2019년, 출장 차 캐나다를 방문한 한국월드비전 직원은 캐나다 직원으로부터 뜻밖의 질문을 받습니다. 삼촌이 후원하던 한국아동을 찾을 수 있겠냐는 거였어요. 우리는 아흔이 넘은 스탠 후원자가 고이 간직해 온 편지와 아동 카드 등을 단서로 아동을 수소문했고, 마침내 환갑이 넘은 후원아동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56년 만에 마주했습니다. 기적 같은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짧았던 행복, 그 시간 속에는
나의 후원자님이 있습니다.
바쁘게 오고 가는 사람들, 차갑지만 햇살이 반짝이던 그 날의 기차역을 또렷이 기억합니다. 저를 번쩍 안아 주신 후원자님의 넓고 따뜻한 가슴은 어린 시절 느껴본 처음이자 마지막 든든한 어른의 품이었습니다.
월드비전 보육원에서 살던 저에게 캐나다인 후원자가 생겼다고 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지 얼마 되지 않아 후원자님은 보육원을 찾아왔지요. 지금이야 외국을 오가는 것이 대수롭지 않지만 60여 년 전에는 어디 그랬었나요? 후원자님과 보낸 며칠 동안 그분 옆자리는 꼭 제 차지였습니다.
살뜰히 저와 친구들을 챙겨주던 보육원에서의 생활은 즐거웠어요. 부모의 사랑이 그리울 때가 왜 없었겠어요? 하지만 학교에 가고 끼니를 거르지 않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들은 그 그리움을 금세 잊게 해주었던 것 같아요.
서러움으로 얼룩진 어린 시절,
세월이 지나도 한스러웠지요.
이른 봄처럼 다정했던 행복은 열두 살, 입양이 되며 거짓말처럼 끝났습니다. 입양이 되었으니 후원도 멈추었고 자연스럽게 스탠 후원자와 연락도 끊겼지요.
불행히도 양부모님은 제게 사랑을 주지 않았습니다. 대가족의 살림살이 모두가 제 몫이었고 학교마저 보내주지 않았어요. 스물 두 살 취업해, 집을 나오기 전까지 한 순간도 쉬지 못하고 노예처럼 일만했던 제 손과 귓바퀴는 빨갛게 터져버렸어요.
수십 년이 지나, 이제 저도 자녀와 손주를 둔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손주들의 애교 넘치는 사진을 볼 때마다 이런 사진 한 장 없이 자란 내 어린 시절이 참 딱하고 불쌍했어요. 부모로부터 사랑은커녕 종처럼 부림 당한 서러움은 한으로 남아 긴 세월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몇 년 전, 임종을 앞둔 양아버지가 모든 것이 당신 잘못이라 하셨을 때에도 이제와 왜 이런 말씀을 하시나, 하는 마음뿐이었지요.그렇게 양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제 삶을 뿌리 채 흔들었습니다. 평생 양아버지로 알고 살았던 그 분이 제 친부였다는 거였어요.
'왜? 왜? 도대체 왜!'
길을 가다 누구라도 마주치면 붙잡고 울고 싶은 심정이었고, 한 동안 제정신이 아닌 채 눈물로 살았습니다.
나를 사랑해 준 단 한 사람.
불행하다고만 여겼던 내 어린 시절이
순식간에 행복하고 따뜻해졌어요.
억지로 마음을 추스른 지 얼마 되지 않을 무렵 월드비전에서 나를 찾는다는 연락과 흑백사진 몇 장을 보내왔습니다. 한 외국인 청년이 한국인 아이를 살포시 안고 있는 모습 그리고 기차역. 뜨거운 눈물이 뚝, 뚝 흘러내렸습니다.
후원자님에게 안겨 씽긋 웃고 있는 어린 나를 보자 즐거웠던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습니다. 불행하다고만 여겼던 어린 시절이 순식간에 행복하고 따뜻해졌지요.
1965년 한국을 다년간 후 지금까지 저와 함께 찍은 사진을 소중히 보관하고, 틈틈이 자녀들에게 제 이야기를 했다는 나의 후원자님.
우리는 월드비전의 도움을 받아 56년 만에 마주했습니다. 건장했던 청년 스탠 후원자님은 아흔이 훌쩍 넘어 한마디 말도 뗄 수 없었지만 화면으로 보이는 제 모습이 신기한 듯 조금씩 고개를 움직이며 눈을 마주쳤습니다.
“저를 기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후원자님은 저를 사랑해 주신 유일한 분이세요.
제 어린 시절 사진은
후원자님이 찍어주신 56년 전 사진이 전부입니다.”
후원자님께 인사를 전하며 목이 메었습니다. 조금 더 건강했을 때, 코로나가 우리를 덮치지 않았을 때, 연락이 닿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럼 내가 당장 캐나다로 달려갔을 텐데. 안타까움에 가슴이 미어졌지만 이렇게 만난 것도 기적이겠지요.
친부모 마저 버린 나를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해준 나의 후원자님. 그 사랑은 여전히 살아있어 육십이 넘은 제게, 내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알게 해주었어요. 이 따듯한 마음이 널리 퍼지도록 이제는 제가 외롭고 힘든 아이들을 품에 안으려 합니다.
후원자님 얼굴을 직접 뵐 수 있는 그날을 기대하며 저는 오늘을 열심히,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후원자님, 부디 건강하세요.
※ 위 내용은 김미숙 후원자님(가명) 인터뷰를 기반으로 재구성하였습니다.
사진과 자료 캐나다월드비전, 윤지영 후원동행2팀
김보영 커뮤니케이션팀